단양선
단양선(丹陽線)은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서 단양탄전 지역인 대강면 고수리(현 단양읍 고수리) 또는 가곡면 사평리를 연결하기 위하여 계획되었던 철도이다.
역사
[편집]1943년 12월 30일, 단양석탄공업주식회사가 도담역에서 단양군 대강면 고수리까지 8.1 km의 무연탄 수송을 위한 762 mm 협궤 철도 노선의 공사를 승인받았다.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어 공사는 중단되었다. 전체 구간 가운데 30%가량이 부설되었었고, 특히 3개의 교각 중 270 m 구간이 건설된 뒤였다.[1]
1940년대 말에는 삼척탄광선·영월탄광선과 함께 단양탄광선(丹陽炭鑛線)이라는 이름으로 계획되었다. 단양탄전 일대의 무연탄 매장량이 1억t으로 추정되었는데, 차량을 통한 육로 수송이 쉽지 않아 철도 부설을 꾀하게 되었다.[1] 보도에 의하면 이 노선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기설(旣設)된 노반을 활용[주 1]하는 760 mm 협궤선으로, 도담역과 가곡면 사평리를 13 km의 거리로 연결하며, 총 500 m의 터널 2개와 산지 절개가 예정된 난공사였다.[1] 세 노선은 각각 영암선·영월선과 단양선으로 이름이 바뀌었고, 단양선은 1949년 5월에 착공하였다. 1949년 8월 당시 공사가 70%가량 진행되었고[2], 1950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었으나[3],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공사가 중지되었다가 종전 후에도 재개되지 않았다.[4] 이 때 건설되었던 남한강을 건너는 철도 교각 상단부는 1985년~1986년에 철거되었는데, 하단부는 강물 아래에 잠겨 있다.[5]
1960년대에는 도담역과 가곡면 사평리를 연결하는 길이 10.6 km의 사평선(沙坪線) 계획이 등장하였다.[6]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서 계획이 수립되었으나, 1968년에 육상 수송 수단을 철도에서 도로로 전환하는 것으로 계획의 방향이 바뀌어 결국 건설이 취소되었다.[7]
연혁
[편집]- 1943년 12월 30일: 단양석탄공업주식회사에서 도담역-고수리 간 8.1 km 철도 부설 면허 취득[8]
- 1949년 5월: 도담-사평 간 13 km 단양선 착공[1][9]
- 1960년대: 도담-사평 간 10.6 km 철도 계획 추진 (일명 사평선)
같이 보기
[편집]각주
[편집]- 내용주
- ↑ 그러나 현지 답사에 의하면, 단양석탄공업의 전용선과 해방 직후의 단양선의 노반은 거의 겹치지 않는다.
- 참조주
- ↑ 가 나 다 라 “매장탄량수억톤 단양,영월등철도부설시급”. 동아일보. 1948년 12월 28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
- ↑ “삼신설선공사활발(三新設線工事活潑) 단양선(丹陽線)온명춘준공(明春竣工)”. 조선일보. 1949년 8월 1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
- ↑ “뻗어가는수송동맥 영월선래삼월까지완성”. 경향신문. 1950년 5월 10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
- ↑ “열차증발계획(列車增發計劃)”. 조선일보. 1953년 1월 2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
- ↑ 방병철 (2008년 5월 28일). “뱃길 교각 20년째 방치 유람선 대형사고 '아찔'”. 충청일보. 2015년 1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
- ↑ 철도건설국 (1969). 《철도건설사》. 서울: 교진사. 391쪽.
- ↑ “철도건설억제방향”. 경향신문. 1968년 5월 27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
- ↑ “조선총독부관보 휘보 전용철도부설면허”. 1944년 1월 13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
- ↑ “영월선수개통제천송학간십일월부터”. 경향신문. 1949년 10월 10일. 2020년 5월 17일에 확인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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